정치적인 우위는 군사력의 우세를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정치만으로 권력을 잡을 수는 없다. 권력을 잡는 데에는 군사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정치력의 후퇴가 반드시 군사력의 후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왕비와 추밀원에 의해 ‘잉글랜드의 수호자’ 지위에서 물러난 요크였지만, 북쪽을 중심으로 요크의 세력은 아직까지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세인트 올번에서 랭커스터군을 대파했던 군사력도 여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요크파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마거릿은, 이번 기회에 요크파를 완전히 제거할 결심을 한다.
마거릿의 가장 중요한 타켓은 ‘킹메이커’ 워릭이었다. 세인트 올번 전투 이후 승리의 주역이었던 워릭은 칼레의 제독으로 임명되었는데, 출중한 재능에다 군사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워릭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요크파를 몰아내기 힘들다고 그녀는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칼레의 제독에 취임한 후, 정치에는 일절 신경쓰지 않고 제독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고 있는 워릭을 제거하는 것은 마거릿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가 요크파의 거두인 워릭이었기 때문에 자칫했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받을 수도 있었다. 워릭을 제거하려면 타당한(혹은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명분과 합법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워릭을 제거할 명분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정치적 권력은 없는 명분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정치적 권력은 마거릿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마거릿은 워릭을 말려 죽이기로 결심한다. 추밀원을 비롯한 수중에 있는 정치권력을 동원해 자파 사람을 재무상으로 삼은 후, 칼레 제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어버린 것이다.
적국 프랑스에 둘러싸여 있고 잉글랜드 본토와는 바다를 사이에 끼고 있는 칼레를 지키려면 상당한 규모의 군대가 필요하다. 게다가 육지의 섬이나 다름없는 칼레를 방위하는 데에는 육군뿐 아니라 해군도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육, 해군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재원을 칼레 현지의 세수만으로 조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잉글랜드 본토의 지원 없이는 군대를 유지할 예산을 마련할 수 없었고, 자금 없이는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다. 군대 없이 칼레를 지키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다. 그러나 요크에게는 군사력이 있었다.
군대는 단순히 경제적인 면만 놓고 보면 매우 비경제적인 투자 대상이다. 물론 군사력 없이는 경제력도 곧 사라져 버리지만, 군사력이 경제력을 만들어주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군사력으로 경제력을 창출하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적을 물리쳐서 전리품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본국의 지원 없이 칼레의 군대만으로 프랑스군을 물리쳐 전리품을 획득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군자금이 없다면 칼로 빼앗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빼앗는 대상이 칼레 주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프랑스와 맞서는 최전방 도시인 칼레에서 민심을 잃는 것만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국 국민이자 전시에는 후방 보급을 맡아줄 칼레 주민을 약탈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칼레가 영국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칼레가 북유럽 무역의 중심기지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레는 무역선들이 자주 왕래하는 항구기도 했다.
100년 후의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서도 볼 수 있듯, 15-16세기의 해군은 국가의 통제하에 있는, 기강이 비교적 엄격한 해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육지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도적 노릇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바다에서 외국 상선을 상대로 노략질하는 것이라면 경우가 달랐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해군과 해적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해군이 해적으로 돌변하는 데에는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칼레의 해군은 워릭의 지도하에 대대적인 해적 활동을 시작한다. 타켓이 된 것은 에스파냐와 북독일의 한자동맹의 무역선. 워릭이 직접 지휘한 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어 워릭은 재정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만한 물자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병사와 백성들의 지지까지 얻게 되었다. 워릭의 해적 활동이 일반 병사와 백성들에게는 낭만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 지지가 훗날 워릭과 요크파에게 큰 힘이 된다.
재정 지원을 끊어 요크를 고립시킨다는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자,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워릭을 제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마거릿은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쓰기로 한다.
당시 잉글랜드의 캡틴(제독)에겐 여러 가지 권한이 있었지만, 외국의 상선을 습격해 재물을 빼앗는, 즉 외국 상선을 대상으로 해적질을 할 권한은 부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시대의 드레이크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비록 공식적으로 부여된 권한은 아니었지만 적국의 부를 빼앗아 자국의 부를 늘리는 해적 활동은 당시로썬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상대국의 반발을 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은밀히 장려되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당시 잉글랜드가 분열돼 있지만 않았다면, 혹은 권력을 잡고 있던 마거릿 왕비와 워릭이 적대 관계가 아니었다면 워릭의 이런 행동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드레이크처럼 왕에게 표창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격하게 법률적으로 따져 보면 이것은 분명한 월권 행위였고, 마거릿에겐 이것이면 충분했다. 드디어 기더리던 때가 온 것이다.
마거릿은 법률 재판소에 캡틴의 권한에 포함되지 않은 해적질을 하므로써 월권을 행사했다는 명목으로 워릭을 기소한다. 법률에 호소하는 방식을 쓴 것이므로 당연히 법률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었고 기소의 명분 역시 타당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워릭이 월권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재판이 진행되면 완전히 마거릿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던 법률 재판소는 왕비가 원하는 판결을 내려줄 것이었다.
명분도 충분했고 절차 역시 완전히 합법적이었다. 워릭으로써도 소환에 응하지 않을 명분은 없었다. 그러나 무방비 상태로 순순히 소환에 응하는 것은 호랑이굴에 제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환을 피할 수도, 소환에 응할 수도 없어진 워릭은 호위대를 이끌고 런던으로 가기로 한다. 호위대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런던의 민심에 호소한다면(런던은 요크의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법원 역시 편파적인 판결은 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칼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워릭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왕비의 명을 받고 워릭과 동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근위대였다. 워릭이 순순히 소환에 응하지 않으리라 예상한 왕비는 워릭을 무장해제시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려 한 것이었다. 결국 워릭을 연행하려는 근위대와 워릭의 호위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워릭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랭커스터파의 음모라 반발하고 칼레로 돌아간다.
마거릿과 워릭이라는 랭커스터와 요크 두 파의 실세 사이의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선을 넘는 순간이었다.
왕비와 추밀원에 의해 ‘잉글랜드의 수호자’ 지위에서 물러난 요크였지만, 북쪽을 중심으로 요크의 세력은 아직까지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세인트 올번에서 랭커스터군을 대파했던 군사력도 여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요크파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마거릿은, 이번 기회에 요크파를 완전히 제거할 결심을 한다.
마거릿의 가장 중요한 타켓은 ‘킹메이커’ 워릭이었다. 세인트 올번 전투 이후 승리의 주역이었던 워릭은 칼레의 제독으로 임명되었는데, 출중한 재능에다 군사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워릭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요크파를 몰아내기 힘들다고 그녀는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칼레의 제독에 취임한 후, 정치에는 일절 신경쓰지 않고 제독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고 있는 워릭을 제거하는 것은 마거릿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가 요크파의 거두인 워릭이었기 때문에 자칫했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받을 수도 있었다. 워릭을 제거하려면 타당한(혹은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명분과 합법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워릭을 제거할 명분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정치적 권력은 없는 명분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정치적 권력은 마거릿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마거릿은 워릭을 말려 죽이기로 결심한다. 추밀원을 비롯한 수중에 있는 정치권력을 동원해 자파 사람을 재무상으로 삼은 후, 칼레 제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어버린 것이다.
적국 프랑스에 둘러싸여 있고 잉글랜드 본토와는 바다를 사이에 끼고 있는 칼레를 지키려면 상당한 규모의 군대가 필요하다. 게다가 육지의 섬이나 다름없는 칼레를 방위하는 데에는 육군뿐 아니라 해군도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육, 해군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재원을 칼레 현지의 세수만으로 조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잉글랜드 본토의 지원 없이는 군대를 유지할 예산을 마련할 수 없었고, 자금 없이는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다. 군대 없이 칼레를 지키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다. 그러나 요크에게는 군사력이 있었다.
군대는 단순히 경제적인 면만 놓고 보면 매우 비경제적인 투자 대상이다. 물론 군사력 없이는 경제력도 곧 사라져 버리지만, 군사력이 경제력을 만들어주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군사력으로 경제력을 창출하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적을 물리쳐서 전리품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본국의 지원 없이 칼레의 군대만으로 프랑스군을 물리쳐 전리품을 획득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군자금이 없다면 칼로 빼앗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빼앗는 대상이 칼레 주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프랑스와 맞서는 최전방 도시인 칼레에서 민심을 잃는 것만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국 국민이자 전시에는 후방 보급을 맡아줄 칼레 주민을 약탈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칼레가 영국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칼레가 북유럽 무역의 중심기지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레는 무역선들이 자주 왕래하는 항구기도 했다.
100년 후의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서도 볼 수 있듯, 15-16세기의 해군은 국가의 통제하에 있는, 기강이 비교적 엄격한 해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육지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도적 노릇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바다에서 외국 상선을 상대로 노략질하는 것이라면 경우가 달랐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해군과 해적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해군이 해적으로 돌변하는 데에는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칼레의 해군은 워릭의 지도하에 대대적인 해적 활동을 시작한다. 타켓이 된 것은 에스파냐와 북독일의 한자동맹의 무역선. 워릭이 직접 지휘한 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어 워릭은 재정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만한 물자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병사와 백성들의 지지까지 얻게 되었다. 워릭의 해적 활동이 일반 병사와 백성들에게는 낭만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 지지가 훗날 워릭과 요크파에게 큰 힘이 된다.
재정 지원을 끊어 요크를 고립시킨다는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자,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워릭을 제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마거릿은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쓰기로 한다.
당시 잉글랜드의 캡틴(제독)에겐 여러 가지 권한이 있었지만, 외국의 상선을 습격해 재물을 빼앗는, 즉 외국 상선을 대상으로 해적질을 할 권한은 부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시대의 드레이크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비록 공식적으로 부여된 권한은 아니었지만 적국의 부를 빼앗아 자국의 부를 늘리는 해적 활동은 당시로썬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상대국의 반발을 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은밀히 장려되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당시 잉글랜드가 분열돼 있지만 않았다면, 혹은 권력을 잡고 있던 마거릿 왕비와 워릭이 적대 관계가 아니었다면 워릭의 이런 행동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드레이크처럼 왕에게 표창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격하게 법률적으로 따져 보면 이것은 분명한 월권 행위였고, 마거릿에겐 이것이면 충분했다. 드디어 기더리던 때가 온 것이다.
마거릿은 법률 재판소에 캡틴의 권한에 포함되지 않은 해적질을 하므로써 월권을 행사했다는 명목으로 워릭을 기소한다. 법률에 호소하는 방식을 쓴 것이므로 당연히 법률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었고 기소의 명분 역시 타당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워릭이 월권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재판이 진행되면 완전히 마거릿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던 법률 재판소는 왕비가 원하는 판결을 내려줄 것이었다.
명분도 충분했고 절차 역시 완전히 합법적이었다. 워릭으로써도 소환에 응하지 않을 명분은 없었다. 그러나 무방비 상태로 순순히 소환에 응하는 것은 호랑이굴에 제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환을 피할 수도, 소환에 응할 수도 없어진 워릭은 호위대를 이끌고 런던으로 가기로 한다. 호위대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런던의 민심에 호소한다면(런던은 요크의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법원 역시 편파적인 판결은 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칼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워릭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왕비의 명을 받고 워릭과 동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근위대였다. 워릭이 순순히 소환에 응하지 않으리라 예상한 왕비는 워릭을 무장해제시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려 한 것이었다. 결국 워릭을 연행하려는 근위대와 워릭의 호위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워릭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랭커스터파의 음모라 반발하고 칼레로 돌아간다.
마거릿과 워릭이라는 랭커스터와 요크 두 파의 실세 사이의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선을 넘는 순간이었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