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올번 전투에서 대승한 요크군은 헨리 6세에게로 몰려들었다. 헨리 6세 주위의 신하들은 이미 대부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고, 그나마 무사했던 몇 안되는 신하마저 도망친 후였기 때문에 헨리 6세는 버림받은 채 혼자 남아 있었다.
곧 다른 포로들과 함께 성 피터 교회의 수도원(인근의 가죽장이의 집으로 갔다는 설도 있다.)로 끌려간 헨리 6세를 맞이한 것은 다름아닌 요크 공작이었다. 왕 앞에 선 요크 공작과 요크군의 지도자들은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왕을 향해 무기를 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서머싯의 죽음을 축하하는 축제에 같이 참여해 줄 것을 간청한다.
1000여년 전 보니파키우스를 물리치고 갈라 플라키디아 앞에 선 서로마 제국의 아이티우스를 연상시키는, 웃음이 나오는 촌극이었지만 당사자, 특히 헨리 6세에게는 매우 심각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병사도 신하도 모두 잃어버린 헨리 6세는 요크 공작을 기꺼이 용서하고,(요크 공작이 헨리 6세를 용서했다는 것이 더 진실된 표현일 것이다.) 런던으로 입성하는 개선 행렬에 참가할 것을 약속한다.
그 다음날 런던으로 당당히 입성한 요크 공작은 1455년 11월 19일, 의회로부터 정식으로 잉글랜드의 수호자(Protector)겸 방어자(Defender)가 되어 실권을 장악한다. 단 2시간의 전투로 20년간의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요크에게 모든 권력을 내주고 이름뿐인 국왕이 된 헨리 6세였지만, 교육과 종교에 이례적일 정도로 열정을 쏟았고, 유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선량했던 헨리 6세는 여기에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비 마거릿은 달랐다.
국왕보다 왕위 계승권이 위고 실권까지 장악한 요크는 이제 누가 보더라도 가장 유력한 차기 왕위 계승자였다. 그러나 요크가 왕위를 차지해서는 마거릿과 그녀의 아들의 자리가 없어져버린다. 요크가 왕위에 오른다면 눈엣가시인 마거릿 모녀의 목숨 역시 위험해진다. 무엇보다, 마거릿은 자신의 아들의 왕위가 한낱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여자가 아니었다.
요크파를 무력으로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정치력을 이용해서라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서머싯과 노섬벌랜드등 국왕파(랭커스터파)의 주요 귀족들이 세인트 올번에서 전사했지만 요크와 네빌에 반대하는 귀족은 아직도 많았고, 무엇보다 이름뿐이긴 하지만 랭커스터가의 헨리 6세가 왕위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로 요크파를 고립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였다.
전략을 짜는 것뿐이라면 요크파에게도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거릿은 이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만한 명석한 두뇌와 정치력, 위선까지 이러한 일을 꾸미는데 필요한 능력들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마거릿은 요크의 반대 세력을 규합하는 동시, 추밀원 내의 반요크 성향의 의원은 물론 중립 성향의 의원들에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추밀원을 서서히 장악해 나간다.
가랑비가 옷을 적셔 나가듯 마거릿은 요크파의 정치적 기반을 잠식해갔고, 요크가 권력을 거머쥔 후 겨우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456년 2월, 마거릿은 마침내 추밀원 장악에 성공, 요크가 20년동안 꿈꿔오던 권력은 요크의 품속에 들어간 지 3개월도 못되어 마거릿과 추밀원에 의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곧 다른 포로들과 함께 성 피터 교회의 수도원(인근의 가죽장이의 집으로 갔다는 설도 있다.)로 끌려간 헨리 6세를 맞이한 것은 다름아닌 요크 공작이었다. 왕 앞에 선 요크 공작과 요크군의 지도자들은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왕을 향해 무기를 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서머싯의 죽음을 축하하는 축제에 같이 참여해 줄 것을 간청한다.
1000여년 전 보니파키우스를 물리치고 갈라 플라키디아 앞에 선 서로마 제국의 아이티우스를 연상시키는, 웃음이 나오는 촌극이었지만 당사자, 특히 헨리 6세에게는 매우 심각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병사도 신하도 모두 잃어버린 헨리 6세는 요크 공작을 기꺼이 용서하고,(요크 공작이 헨리 6세를 용서했다는 것이 더 진실된 표현일 것이다.) 런던으로 입성하는 개선 행렬에 참가할 것을 약속한다.
그 다음날 런던으로 당당히 입성한 요크 공작은 1455년 11월 19일, 의회로부터 정식으로 잉글랜드의 수호자(Protector)겸 방어자(Defender)가 되어 실권을 장악한다. 단 2시간의 전투로 20년간의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요크에게 모든 권력을 내주고 이름뿐인 국왕이 된 헨리 6세였지만, 교육과 종교에 이례적일 정도로 열정을 쏟았고, 유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선량했던 헨리 6세는 여기에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비 마거릿은 달랐다.
국왕보다 왕위 계승권이 위고 실권까지 장악한 요크는 이제 누가 보더라도 가장 유력한 차기 왕위 계승자였다. 그러나 요크가 왕위를 차지해서는 마거릿과 그녀의 아들의 자리가 없어져버린다. 요크가 왕위에 오른다면 눈엣가시인 마거릿 모녀의 목숨 역시 위험해진다. 무엇보다, 마거릿은 자신의 아들의 왕위가 한낱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여자가 아니었다.
요크파를 무력으로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정치력을 이용해서라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서머싯과 노섬벌랜드등 국왕파(랭커스터파)의 주요 귀족들이 세인트 올번에서 전사했지만 요크와 네빌에 반대하는 귀족은 아직도 많았고, 무엇보다 이름뿐이긴 하지만 랭커스터가의 헨리 6세가 왕위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로 요크파를 고립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였다.
전략을 짜는 것뿐이라면 요크파에게도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거릿은 이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만한 명석한 두뇌와 정치력, 위선까지 이러한 일을 꾸미는데 필요한 능력들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마거릿은 요크의 반대 세력을 규합하는 동시, 추밀원 내의 반요크 성향의 의원은 물론 중립 성향의 의원들에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추밀원을 서서히 장악해 나간다.
가랑비가 옷을 적셔 나가듯 마거릿은 요크파의 정치적 기반을 잠식해갔고, 요크가 권력을 거머쥔 후 겨우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1456년 2월, 마거릿은 마침내 추밀원 장악에 성공, 요크가 20년동안 꿈꿔오던 권력은 요크의 품속에 들어간 지 3개월도 못되어 마거릿과 추밀원에 의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덧글
비안네 2008/09/07 12:25 # 삭제 답글
......무섭군요. 삼국지와 같은 소설보다 이런 역사가 어떨 땐 더 소설 같아요;;;
Julianus 2008/09/28 23:58 #
삼국지 같은 소설도 역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무엇보다 역사는 현실감이 넘치니까요.제가 소설같은 역사만 좋아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비안네 2008/09/07 12:35 # 삭제 답글
이제 보니 이글루 제목은 라틴어로 '영원한 도시'.... 포스 넘치는군요.
Julianus 2008/09/29 00:03 #
^^;;실제로는 포스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간입니다만..
sonic 2008/09/07 13:35 # 삭제 답글
약간 논외의 리플이긴 하지만, 어느 역사속에서나 어머니는 강하군요 ㄷㄷ
Julianus 2008/09/29 00:01 #
일세를 풍미했던 여자들을 보면, 고대의 소서노부터 현재의 힐러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대단한 인간이기에 앞서 대단한 어머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실제로도 어머니는 강하지요.
티렌 2008/09/07 14:53 # 답글
관심이 있던 장미전쟁에 대해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잘 보고 갑니다 ^^;
아 그리고 이글루스 링크 해도 될까요?
Julianus 2008/09/08 03:29 #
즐겁게 보고 있으시다니..정말 감사합니다.^^p.s링크는 언제든 대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