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 왕조의 기원은 장미전쟁으로부터 비롯된다.
영국왕 에드워드3세에게는 아들이 넷 있었다.
첫째 아들은 저명한 웨일스 공작-에드워드 흑태자.
둘째 아들은 클라렌스 공작 라이오넬.
셋째 아들은 랭커스터 공작인 곤트의 존.
넷째 아들은 요크 공작인 에드먼드 랭글리.
사실 원래대로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왕위 계승자는 에드워드 흑태자였다.
장자로써 정통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백년전쟁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불패를 자랑하며 명성을 떨친, 실력과 정통성을 겸비한 왕위 계승자였던 것.
그러나 에드워드 흑태자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이 불씨가 되었다.
에드워드 흑태자의 죽음으로 왕위 계승자의 지위는 흑태자의 아들인 리처드에게 넘어가 리처드가 에드워드3세의 뒤를 이어 리처드2세로 즉위하지만, 나이도 어렸던데다 국내 지지기반도 약했던 리처드2세는 곤트의 존의 아들인 헨리를 경계, 헨리의 영지를 몰수했다가 아일랜드 원정 도중 헨리의 역습을 받아 왕위를 잃고, 헨리가 헨리4세로 즉위, 랭커스터 왕조를 열게 된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되니 정통성의 문제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3세의 둘째 아들 클라렌스 공작의 사위의 손자인 에드먼드 모티머가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웨일즈의 영웅 글린드워, 북방의 실력자인 퍼시가문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
원래 게르만 법인 살루카 법은 모계를 통한 계승권을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에드워드 3세가 백년 전쟁을 일으키며 모계를 통해서 자신의 계승권을 주장한 바 있기 때문에(백년전쟁은 사촌과 외손자간의 왕위 계승 전쟁이었다.)에드워드 3세의 손녀의 손자인 모티머 역시 할머니를 통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헨리 4세가 승리를 거두고 그 뒤를 이은 헨리 5세가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전과를 거둬 랭커스터 왕조의 왕위는 바야흐로 반석위에 올라선 듯 보였다.
하지만 다른 불씨가 남아있었다.
에드먼드 모티머에게는 앤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앤이 위의 에드워드 3세의 넷째아들인 에드먼드 랭글리의 아들인 케임브리지 백작 리처드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장미전쟁에서 요크파의 첫 번째 맹주가 되는 요크 공작 리처드였다.
즉, 요크 공작 리처드는 에드워드 3세의 둘째 아들인 클라렌스 공작 라이오넬과 에드워드 3세의 넷째 아들인 요크 공작 에드먼드의 계승권을 모두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랭커스터 가문은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인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헨리 5세의 아들 헨리 6세는 정신이상이 있었고, 요크 공작 리처드는 백년전쟁 후반부에서 활약하며 서서히 세력을 키워 나가, 양측의 갈등은 증폭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인 뷰퍼트 가문과 요크 가문 사이에 벌어진 ‘세인트 올번 전투’ 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장미 전쟁의 시작이었다.
영국왕 에드워드3세에게는 아들이 넷 있었다.
첫째 아들은 저명한 웨일스 공작-에드워드 흑태자.
둘째 아들은 클라렌스 공작 라이오넬.
셋째 아들은 랭커스터 공작인 곤트의 존.
넷째 아들은 요크 공작인 에드먼드 랭글리.
사실 원래대로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왕위 계승자는 에드워드 흑태자였다.
장자로써 정통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백년전쟁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불패를 자랑하며 명성을 떨친, 실력과 정통성을 겸비한 왕위 계승자였던 것.
그러나 에드워드 흑태자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이 불씨가 되었다.
에드워드 흑태자의 죽음으로 왕위 계승자의 지위는 흑태자의 아들인 리처드에게 넘어가 리처드가 에드워드3세의 뒤를 이어 리처드2세로 즉위하지만, 나이도 어렸던데다 국내 지지기반도 약했던 리처드2세는 곤트의 존의 아들인 헨리를 경계, 헨리의 영지를 몰수했다가 아일랜드 원정 도중 헨리의 역습을 받아 왕위를 잃고, 헨리가 헨리4세로 즉위, 랭커스터 왕조를 열게 된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되니 정통성의 문제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3세의 둘째 아들 클라렌스 공작의 사위의 손자인 에드먼드 모티머가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웨일즈의 영웅 글린드워, 북방의 실력자인 퍼시가문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
원래 게르만 법인 살루카 법은 모계를 통한 계승권을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에드워드 3세가 백년 전쟁을 일으키며 모계를 통해서 자신의 계승권을 주장한 바 있기 때문에(백년전쟁은 사촌과 외손자간의 왕위 계승 전쟁이었다.)에드워드 3세의 손녀의 손자인 모티머 역시 할머니를 통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헨리 4세가 승리를 거두고 그 뒤를 이은 헨리 5세가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전과를 거둬 랭커스터 왕조의 왕위는 바야흐로 반석위에 올라선 듯 보였다.
하지만 다른 불씨가 남아있었다.
에드먼드 모티머에게는 앤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앤이 위의 에드워드 3세의 넷째아들인 에드먼드 랭글리의 아들인 케임브리지 백작 리처드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장미전쟁에서 요크파의 첫 번째 맹주가 되는 요크 공작 리처드였다.
즉, 요크 공작 리처드는 에드워드 3세의 둘째 아들인 클라렌스 공작 라이오넬과 에드워드 3세의 넷째 아들인 요크 공작 에드먼드의 계승권을 모두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랭커스터 가문은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인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헨리 5세의 아들 헨리 6세는 정신이상이 있었고, 요크 공작 리처드는 백년전쟁 후반부에서 활약하며 서서히 세력을 키워 나가, 양측의 갈등은 증폭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인 뷰퍼트 가문과 요크 가문 사이에 벌어진 ‘세인트 올번 전투’ 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장미 전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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