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이야기:오르빌 *Life Story

  인도의 퐁디셰리 근처, 오르빌의 모험은 인간이 시도한 가장 흥미로운 이상주의적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1968년 뱅골 철학자 스리 오로벵도와 프랑스 여류 철학자 미라 알파사(<어머니>라 불리었음.)는 그곳에 이상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곳은 모든 것이 중앙으로부터 뻗어 나가는 방사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든 나라로부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주로 절대적 이상향을 추구하던 유럽 인들이 오로빌로 모여들었다.

  남녀 모두 풍차, 수공업 공장, 배수로, 정보 센터. 벽돌 공장을 건설했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영적 경험을 세세히 기록한 몇 권의 책을 썼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살아 있는 <어머니>를 신으로 받들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만사가 순조로웠다. 처음에 그녀는 그런 영예를 사양했다. 그러나 스리 오로벵도가 죽고 나자,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해 줄 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미라 알파사는 오래지 않아 숭배자들의 요구에 무릎을 꿇고 말아다.

  그들은 그녀를 방에 가두고, 살아서 여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죽은 여신이라도 되라고 강요했다. 미라 알파사는 스스로에게 신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미라 알파사는 억지 춘향으로 여신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떄, <어머니>는 아주 쇠약해 보였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기가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과 숭배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음을 폭로하려 하자, 숭배자들은 그녀의 말을 막고 방으로 끌고 갔다. <어머니>는 자기를 숭배하는 척하는 자들이 매일 매일 가하는 고통 때문에 점점 쭈그렁 노파가 되어갔다.

  그래도 <어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자기의 옛 친구들에게 은밀한 전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은 여신, 즉 더 쉽게 숭배할 수 있는 여신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구원 요청은 헛된 것이 되었다. 그녀를 도우려던 사람들은 즉각 공동체로부터 쫓겨났다. 최후의 통신 방법으로, 그녀는 갇혀 있던 방안에서 자신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어머니>는 1973년에 죽었다. 십중팔구는 치사량의 비소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오르빌 공동체는 그녀를 여신으로 예우하면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없어지자, 더 이상 공동체를 공고히 해줄 것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구성원들은 서로 대립했다. 이상 세계에 대한 꿈을 망각한 채, 그들은 서로를 법정으로 끌고 나갔다. 그들이 벌인 많은 소송을 보면서 사람들은 한때 가장 야심만만하고 성공적인 공동체 실험의 하나였던 오르빌에 대해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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